멈추지 않는 게 중요한 거니까

"잘해서가 아니라 좋아해서 하고 있습니다"

 이력서를 쓸 때면 마땅한 취미가 없어 늘 '독서, 음악 감상'이라고 적었다. 이후 열명 남짓한 소규모 컨설팅 회사에 취업을 하고 매일 10시간 이상의 격무와 주말 출근에 시달리며 내 에너지가 온통 일에 쏠려있다 보니 취미에 관심을 둘 여력이 없었고, 회사를 나오고 나선 프리랜서로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지방에 내려가 있는 날들이 많아 주중에는 늘 함께 일하는 팀 중심으로 시간을 보냈다. 개인적 시간이 계속 줄어들며 점점 일에 매몰되고 있는 상황에서 문득 '나'를 위한 무언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2013년 만 26세까지 일정 금액을 내면 최대 7일 간 기차를 무제한으로 탈 수 있는 혜택인 '내일로 기차여행'을 하면서 버킷리스트를 만들기로 했다. 하루하루 여행 일정이 끝나고 게스트하우스에 들어오면 내가 그동안 살면서 재미있게 느꼈던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하고, 앞으로 하고 싶은 것들을 적었는데 이 중 한 가지가 '농구동호회 활동 1년 이상 하기'였다. 운동이라면 웬만해선 다 좋아하는 편이지만 농구라는 운동을 하기로 한 이유는, 농구공만 있으면 농구코트에서 혼자서도 슛을 하며 재미있게 운동할 수 있고, 비싼 농구화를 사지 않는 이상 복장이나 특별한 장비가 없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운동이었기 때문이다.


전공을 체육 분야로 하고 싶어 고등학생 때 학교 앞에서 나눠주던 체육학원 광고지를 열심히 받아 볼 만큼 운동을 좋아했다. 수업 중 체육시간이 제일 재미있었고, '체력장'이라고 하는 체력검사를 할 때마다 매번 1등급이 나오기도 해서 운동신경도 좋은 편이었다. 체육관에서 수업을 할 때면 잠시 쉬는 시간이 주어지더라도 쉬지 않고 한쪽에 모아져 있던 농구공을 가지고 와 남자애들 옆에서 슛을 던지기도 했고, 대학생 때는 남자애들과 공을 던지며 간식내기를 했다.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말을 하지 않는 나에게 운동을 하는 것은 친구들과 조금씩 가까워질 수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여성동호회가 있을 거란 생각을 못하고 주변에 남자농구동호회를 하는 대학교 친구를 따라갔다. 그러나 경기를 실제로 보고 남자들과의 신체적 조건과 움직임의 차이가 커 같이 운동할 엄두가 나지 않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자농구동호회를 인터넷에서 검색하였다. 2000년부터 개설된 제일 오래되고 회원수가 많은 여자농구동호회 카페를 발견하여 가입을 하고 매주 토요일 오후 4시부터 7시까지 진행되는 정모를 나가기 시작하였다. 농구 규칙도 제대로 모른 채 첫 정모를 마친 다음 날 내 몸은 이곳에도 근육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 마냥 온몸에 심한 근육통을 겪으며 만만치 않은 운동이란 걸 느꼈지만 이후에도 한주 한주 꾸준하게 참여하다 보니 6년이 지난 지금도 나의 버킷리스트 '농구동호회 활동 1년 이상 하기'는 지속되고 있다.


농구시합
내가 속한 A 여자농구동호회는 성인인 여성이면 누구나 가입이 가능한데 나와 같은 체육 비전공자인 일반적인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청소년기에 농구클럽을 다녔거나, 20대 초반부터 시작하여 몇 년 이상 농구를 하거나, 전공이 체육이거나, 중고등학교 선수 출신인 경우가 많았다. 27살에 규칙도 모르고 들어간 나는 기술적인 것은 물론 체력적으로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 많이 부족했다. 그렇지만 함께 땀 흘리며 운동하고, 규칙과 새로운 몸의 움직임을 배우는 것, 농구대회 등 각종 이벤트를 참여하는 것 자체가 즐거워 활동한 지 2년 정도는 특별히 농구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2년이 지나고야 농구를 좀 더 체계적으로 하고 싶어 동호회 안에 있는 팀을 들어가 2016년부터 팀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 A 여자농구동호회에는 매주 토요일마다 진행하는 정모를 참여할 수 있는 동호회 활동과 더불어 2개의 정식 팀을 운영하고 있다. 대회가 있을 땐 각 팀 중심으로 나가며 팀이 없이 동호회 활동만 하는 사람들은 별도로 임시 팀을 만들어 나가기도 한다. 현재 코로나로 인해 정모는 중지한 상태다.


  일을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이 간혹 취미를 묻기도 했는데 농구를 한다고 하면 농구하는 여성이 드물어서 그런지  당연히 농구를 잘해서 하는 것이라 생각해서 민망했고, 나도 시간이 지날수록 다양한 기술로 더 재미있게 농구를 하며 팀에 기여하고 싶어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생각과 달리 나의 농구실력은 늘지 않아 점점위축이 되고 스트레스가 생겼다. 행복하려고 시작한 취미에 스트레스가 생기니 농구에 흥미도 떨어졌다. 노력해도 허물 수 없는 실력의 벽을 느끼며 그만두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만둘 수 없었다. 오히려 실력적으로 제일 못했던 처음 1~2년은 농구를 하는 것 자체가 좋았고 동호회 사람들과 농구라는 하나의 주제로 함께 웃고 얘기할 수 있는 행복감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왜 농구가 스트레스가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처음 농구를 할 땐 당연히  못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니 농구라는 운동 자체를 즐겼는데 어느덧 내가 ' 사람들처럼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그렇게 못하는 내가 답답해지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점점 새로운 동작들을 알게 되고 이를 경기 안에서 하고 싶은데 몸은 그렇게 움직여주지 않는 것에 좌절감을 느꼈다. 1년 중 6개월 이상은 지방에 상주하여 근무하는 일이 잦았던 나는 개인적으로 연습할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런 나의 상황적 한계를 무시하고 체육을 전공했거나 농구를 자주 할 수 있는 여건의 사람, 몇 년 전부터 오래 해왔던 사람과 비교하면서 스스로 탓을 하는 것이 흥미를 잃은 요인이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나는 나에게 필요한 기본기부터 배우기 위해 잠시 서울에서 근무하게 된  3개월 동안 농구를 가르쳐주는 스킬트 레이닝을 시작했다. 팀 훈련이 있긴 했지만 기본기보다 팀플레이 위주로 배울 수밖에 없었고 2주에 1번 하는 훈련으로만 몸에 체화되는 것은 어려웠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기본 드리블부터 공 핸들링, 슛 동작을 배웠다. 3개월의 기간이 길진 않았지만 배웠다는 자체로 자신감이 생겼다. 지방에서 근무하게  때엔 근무지나 숙소 근처 야외 코트 위치부터 찾아냈고 시간이 될 때마다 야외 코트를 찾아 트레이닝받은 것들을 복습했다. 또 농구 관련 영상을 보며 내 포지션에 적절한 영상이 있으면 저장해두며 홀로 연습하는 시간을 늘렸다.


  나만의 여건이 다름에도 다른 사람처럼 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욕심을 내고 있었다. 이런 욕심을 버리고 지금보다 내가 농구를 잘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에 집중하다 보니 이전보다 나아지는 모습이 스스로 느껴졌고 이런 작은 성취감들이 주는 즐거움 덕분에 아직 잘하지 못하지만 농구라는 운동은 여전히 나의 취미활동으로 남아있다.

여성농구

 여전히 난 대회 때 주전 선수로 뛰지 못한다. 늘 언제 투입될지 모른 채 벤치에 앉아 뛰고 있는 팀원들을 응원하고 있고, 팀 훈련에서는 다른 이들보다 가장 달리기가 느려 벌칙으로 한번 더 달리기도 한다. 그러나 잘 못한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며 좋아하는 것을 멈추진 않았다. 모두 다 잘해야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잘하지 못하는 것이 의미가 없는 것도 아니다. 진짜 부끄러운 것은 못하는 나를 탓하며 좋아하는 것을 그만두려는 내 생각 자체였다. 남들보다 못하면 어떤가?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아기는 태어나서 발을 떼고 걸을 때까지 3천 번 넘어지지만 다시 일어나 걷기를 반복하여 어느덧 씩씩하게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사람이 된다. 무엇을 하든 좋아하는 것을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모습에 집중하고 이전보다 달라진 나를 사랑해준다면 못한다고 좌절했던 것들이 어느덧 내 옆에서 또 다른 성취의 즐거움을 제공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선수 시절 9000번 이상의 슛을 놓쳤다. 300번의 경기에서 졌다. 20여 번은 꼭 승리로 이끌라는 특별임무를 부여받고도 졌다. 나는 인생에서 실패를 거듭해왔다. 이것이 내가 성공한 정확한 이유다
- 마이클 조던 -



왕밤이님의 브런치에 기고된 글을 스포츠콕이 한 번 더 소개합니다.

왕밤이

나를 둘러싼 일상에서 느끼는 사물과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감정의 곡선을 공유합니다. 삶과 죽음 사이 불안, 행복에 대해 심리학적 마인드와 철학적 사유로 고찰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