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수업

"이렇게 윽박지르지 않고서 운동을 가르칠 수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

체육을 가르치는 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좋지가 않다. 아직도 체육 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는 이유도 없이 화나 있으며 강압적이고 윽박지르는 사람이 가르치는 수업이라는 거다. 매 순간마다 긴장을 많이 하고 사는 나는 그런 분위기가 되면 머릿속이 하얘져서 실수를 더 많이 하곤 했다.

피겨를 배운 지 얼마 안 되었을 그 무렵, 그 무렵의 나는 인간관계에 대한 희망도 없었고 미래 설정에 대한 거듭된 실패 끝에 앞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목표도 다 사라져 그냥 가만히 세월이 가는 것만 기다리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하루하루가 무기력했다. 나를 초조하게 만들었던 건 인간관계였다. 나는 왜 이렇게 인복 자체가 없나 싶을 정도로 어렸을 때부터 좋은 인간관계 형성을 하지 못했다. 커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으니 그 외의 것이라도 이뤄내야 했는데 아무것도 이룬 게 없어 마음이 삭막했다.


피겨를 배운 지 2개월 차, 나는 피겨 선생님이 좋았다. 이렇게 윽박지르지 않고서 운동을 가르칠 수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못한다고 손가락으로 지적도 안 하고 말이다. 진도보다는 기초에 충실했던 선생님이라 진도가 느려 매번 기초적인 것만 하다 끝나는 일이 많았지만 선생님의 노련함이 좋았다. 한 번에 보고 문제점이 무엇인지 1초 만에 알았으며 빠릿빠릿하게 수강생들을 지도해나갔다. 아무리 인원수가 많아도 일정하게 다 봐주셨다. 그 당시만 해도 연령대가 다양해서 사람들끼리도 두루두루 친했다.


우리는 강습이 끝난 후 서로 모여 오늘 강습이 어땠는지에 대한 선생님의 한마디를 듣고 수업을 마치곤 했다. 선생님은 어떻게 하면 피겨를 잘 탈 수 있는지에 대한 말이나 체육관의 공지사항들을 말씀하시면서 끝났고 우리는 박수를 치고 링크장 밖으로 나갔다. 그날도 선생님이 강습생들을 한 자리에 모이라고 했다.


"죄송한 말씀을 드리자면 한 달 후에 그만두게 되었어요."


선생님은 개인 사정으로 인해 그만두게 되었다 했다. 그 당시에는 그 말이 그렇게 청천벽력 같았다. 강습생들은 수업이 끝나자마자 부츠 끈을 풀며 이 선생님이 잘 가르치는데 그만두면 누가 오냐는 말부터 시작했다. 같은 시간대에 수업을 듣는 쇼트트랙 강습생 한 분은 이 피겨 선생님이 잘 가르치는 것 같아 보여 좋았는데 아쉬워서 어쩌냐고 할 정도였다. 선생님이 그만둔다는 것과 어느 선생님이 오냐에 대한 이야기는 선생님이 떠나시기 전까지 계속됐다. 링크장에 처음 보는 선생님이 있으면 저분이 우리를 맡으시는 건가 싶어 서로 정보 공유를 하기도 했다. 가장 우려되었던 건 이 선생님보다 별로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었고 성인이라고 설렁설렁 가르치는 분이 오면 어쩌나 하는 거였다. 실제로 다른 시간대, 다른 선생님에게 받고 있는 성인분이 우리는 설렁설렁 가르쳐줘서 지금 우리 피겨 선생님이 잠깐 와서 가르쳤을 때 너무 자세히 알려줘서 놀랐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나보다 한 달 먼저 강습을 받은 분이 갑자기 마지막 수업 때 선생님을 위해 뭐라도 해드리자며 의견을 냈다. 나는 이 분이 모든 일에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는 분인 줄 알았는데 이 선생님의 일에만 그랬던 걸 보면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분도 이 선생님에게 배웠던 순간들이 엄청나게 의미 있게 다가왔었구나 싶었다.


그렇게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마지막 수업이 왔고 링크장 안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학생들은 선생님께 케이크와 작별의 편지를 써서 드렸다. 다른 수강생들보다 이 선생님에게 배운 경력은 짧았지만 오랫동안 친하게 지냈던 사람과 헤어질 때와 같은 아쉬운 마음이었다.


어떤 인연은 오래 만나도 아쉬움도 미련도 없는 반면에 어떤 인연은 짧았지만 아쉬움이 강하게 남는 인연이 있는 것 같다. 이 선생님과 함께 한 시간은 짧았지만 매 순간마다의 정성스러웠던 수업 덕분이었을까. 지금도 이 선생님이 종종 생각난다. 그때 반 분위기가 특별히 좋았기도 하고 수업 방식도 마음에 들었다. 모든 게 다 좋았던 때였다. 조금 더 일찍 배워서 그 선생님한테 더 길게 배웠다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종종 든다. 이때 강습생들도 좋은 분들이 많아 나도 이런 인간관계를 쌓을 수 있구나 싶어 좋아했었다. 하지만 이 이후로 이 선생님께 배웠던 대다수의 사람들이 시간대를 옮기거나 운동을 그만두었다. 그 사람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가끔 안부라도 알고 싶다.




얼음꽃님의 브런치에 기고된 글을 스포츠콕이 한 번 더 소개합니다.

얼음꽃

피겨 타는 이야기와 그 외 등등. 잘 쓰진 못해도 술술 읽히는 글을 쓰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