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두라스, 체육시간에는 뭘 해야 할까 ¿Qué puedo? | 토마사초등학교

나는 선생님을 싫어했다. 미안하지 않다. 선생님도 나를 싫어했다.

12년간의 공교육이 마침내 끝났을 때 가장 좋았던 건 스무 살의 자유도, 대학 합격도 아니었다. 두 번 다시는 선생님을 보지 않아도 되는 게 제일 좋았다. 마침내 맞이했던 고등학교 졸업식때는 더 이상 스승의 날에 억지 노래를 부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너무 신나서 <작별>을 낄낄거리며 불렀다.

내가 싫어했던 선생님들은 내 인생에 많은 도움이 됐다. 그 사람들처럼 살지 말아야지 생각하며 사니 덕분에 인생 살기 아주 쉬웠다. 선생님들이 나에게 했던 것과 반대로 행동하면 대부분 정답에 가까웠다. 자그마치 십수 년 전 선생님이 싫다고 굳. 이. 말하는 걸 보면 나도 뒤 끝이 쩐다. 하지만, 내가 그들을 싫어하고, 그들에게 분노했던 건 정말 중요하다.

난감하게도 지금 내가 선생이되었기 때문이다.




2월 22일

학교 선생님들이 잘 챙겨주신다."졔, 한국 그립지? 괜찮아? 가족들 보고 싶지? 그래도 오늘 금요일이니까 힘내!"

어떤 선생님은 나 때문에 동아시아에 관심이 생겼다고 했다. 어제는 티브이에서 김정은을 봤다며 남한과 북한의 다른 점에 대해서 물었다. 에스파뇰이 짧은탓에 정확한 설명을 하지 못하는게 너무 죄송했는데, 선생님은 그저 나랑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가 있는 것 자체로 좋아하시는 것 같아 보였다. 나를 향한 배려와 관심이 너무 감사하다. 촐루떼까에서 사랑받는다.


옵제르바시온 4일째

이곳에서 어떤 수업을 해야 하는지 고민이 된다. 솔직한 심정으로 수업참관 5일은 나에게 충분하지 않기에 며칠 더 하고 싶지만 그저 바람일 뿐, 증명은 결과로 하니까 이제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3학년 2반 수업을 참관했다. 이번 학기 유일한 3학년이다.

특유의 온두라스식 Ejercicio가 시작됐다. '스쿼트', 팔 벌려 높이 뛰기' 그리고 '레그레이즈'등 다양한 동작을 했다. 깐차(Cancha)에 배를 깔고 누워서 하는 동작도 스스럼 없이 가능하다. 깐차가 조금만 더 깨끗하면 좋을 텐데 아쉽다.

아이들이 "꺄르르"웃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너무 좋았다.


나만 할 수 있는 수업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수업을 하고 싶다.

2016년 토마사 초등학교에 '다까라'라는 JICA(자이카, 일본)의볼룬따리오가 활동했었다. 그는 약 1년 동안 있었고, 주로 평균대를 활용한 체조 수업했다고 한다. 그가 떠나고 2년 뒤 나는 이 학교의 두 번째(적어도 내가 아는 선에서는) 볼룬따리아다. 토마사 초등학교에 체육봉사자가 내가 처음이 아닌 걸 알았을 때, 앞으로 해결해야 할 근본적인 문제를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속 가능함'을생각하지 않고 나만 잘하는 활동을 독고다이로 하고 떠나버리면, 이 학교는 자립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체육수업을 외국인 볼룬따리오에게 의지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나는 다음 주부터 쌓이게 될 체육수업자료를 모두 오픈소스로 관리하고 싶다. 이 자료는 선생님들은 언제, 어디서든 볼 수 있고 원한다면 활용・변형하여 체육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같이 의논하여 온두라스 문화・환경에 알맞은 수업을 만들고 싶다. 나만 할 수 있는 건 의미가 없다.

체육수업은 감정 표현이 자유로운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선생님은 한 명, 아이들은 40~50명 되는 상황에서는 이슈 없이 수업을 마무리하는 게 최선의 결말이다. 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선생님은 권위적인 포지션을 취하고 아이들과 상하 복종 관계를 만들게 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좋은 모습은 아니다. 그저 몸이나 좀 움직이려고 체육을 하려고 하는 게 아니다.


"내가 알아야 할 도덕과 의무는 골키퍼를 통해 배웠다."

<이방인>의 저자 알베르트 카뮈는 17세 때까지 알제리의 지역 축구팀에서 골키퍼로 뛰었다. 결핵을 앓은 탓에 더 이상 축구선수를 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그가 골키퍼로 뛰면서 경험했던 감정들이 그가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체육은 신체발달만을 위한 시간이 아니다. 인생에서 느끼게 될 다양한 감정을 미리 경험하고 배우는데 목적이 있다. 기쁨, 슬픔, 분노, 우울, 좌절, 회복 그리고 이 외에도 느낄 수 있는 모든 것들. 그것들을 느끼지 못하는 활동이라면 나는 해야 할 이유가 없다. 바로 이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군기 바짝 들어간 상황을 좋아하지 않는다. 강압적인 분위기에서는 감정 표현을 자유롭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감정 표현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수업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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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5일

옵제르바시온 마지막 날

마지막 날인데, 오전 수업이 전부 취소됐다. 담임 선생님들이 갑자기 안 나오시는 건 아닐 테고, 사전에 이야기된 내용일 텐데. 나는 왜 수업시간이 다 돼서야 이 사실을 알게 되는 걸까. 하나하나가 아쉽다.


다행히도 오후에 1학년(혹은 2학년) 체육수업을 참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일 당장 내 수업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니, 수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음에 여유가 없으니 애들이 장난치는 것도 받아 주지 못했다. 마음의 여유는 항상 중요하다. 잔잔한 마음 상태를 유지하는 건 평생 숙제다.

온두라스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어이 치나!!”

나도 나지만, 만약 진짜 중국인이 와서 들으면 너무 슬플 것 같다.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걸어가는데 너도 나도 신나게 약 올리면서 “야 중국인아!!!” 하고 시비 거는데 얼마나 속 터질까.


학교 아이들 사이에서 괴롭힘이 있는데, 힘 약한 애들 놀릴 때 “치나”라고 부른다.

단어 자체가 부정적으로 쓰인다. 이 지구 반대편에서 중국인인 게 무슨 죄인가. 이유 불문 차별은 나쁘다.

옵제르바시온을 끝마치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고민을 많이 했다.

몇 번을 썼다 지우고, 이래저래 끄적이다가 앞으로 온두라스에서 활동을 하면서 내가 흔들리지 않도록 도와줄 나만의 수업 구성 기준점을 만들었다.


1. 현지에서 실시해 왔던 체육수업을 파괴하지 않고, 존중하는 선에서 진행할 것.

현지의 수업 방식을 얼마나 이질감 없이 발전시킬 것인가?

2. 한국에서 체육 선생님이 왔으니 분명하게 다른 수업 방식을 보여줄 것

기대했던 것보다 200% 만족시킨다.

3.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기간을 두고 목표를 달성하는 성취지향형 수업이 될 것

'배움'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으면 한다. 아이들이 스스로 목표를 달성하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4. 나만 할 수 있는 수업이 아니라, 모두가 할 수 있는 수업이 될 것

내가 수업계획서를 공유했을 때 현지 선생님들이 이해하고 직접 할 수 있는 수업, 곳간은 열어야 된다. 아끼면 똥 된다.


새롭게 생긴 네 가지 기준점과 그동안 내가 가진 신념을 더해서, 영혼을 갈아 만든 수업이 됐으면 한다.

수업하다가 배꼽 찢어지는 거다.


Ze Kim 작가님의 블로그에 기고된 글을 스포츠콕이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