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여자를 위한 헬스장은 없다 '레이디존' 말고, 진짜 필요한 것들

김냥덕

 "어휴, 헬스장 웨이트존에 남자들만 바글바글한데 어떻게 가요"

 "초보라 운동 잘 못해서 괜히 참견받을까봐...옷이나 얼굴도 신경쓰여요."     


 보통 여자들이 헬스장에 가기 힘든 이유라고 한다면 이 정도가 거론된다. 처음엔 남자들이 많아서 부담스러울 수 있다. 내 방 침대가 아닌 이상에야 화장이나 옷같은 게 신경 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헬스에 살금 취미를 붙이기 시작한 여자들에게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큰 장벽은 조금 결이 다르다.      


모든 기구는 대체로 여성의 몸에 잘 맞지 않는다.     


 어떤 운동이건 본 운동을 하기 전엔 스트레칭 외에도 몸을 푸는 '웜엄(warm-up·몸 풀기)' 세트가 필수다. 잠자는 근육을 충분히 깨우고, 다치지 않고 운동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대부분의 헬스장에선 여성의 신체 조건에 맞는 덤벨이나 기구가 충분히 갖춰져있지 않다.      


 벤치프레스 50kg을 한다고 해서 50kg로만 5세트를 내리 들진 않는다. 예를 들어 벤치프레스를 최대 35kg 들어올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10~15kg의 가벼운 무게로 본운동 돌입 전에 가볍게 자극을 주며 점진적으로 무게를 올려가는 것이 좋다. 


 그러나 헬스장의 표준적인 '빈 바(원판이 하나도 꽂히지 않은 막대)'의 무게는 20kg다. 여성의 경우 남성에 비해 선천적으로 가슴 근력이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스쿼트, 데드리프트는 80~100kg를 넘기는 사람들이 종종 보여도 벤치프레스 60kg를 넘기는 건 파워리프팅 쪽으로 훈련을 오래 한 사람이거나 선수 급이 아닌 이상 드물다.      

 실제 영국 론 킬고어(Lone Kilgore·2005) 박사가 제시한 기준표에 따르면 체중 54kg인 여성의 벤치프레스 중급자 무게는 37kg, 선수급은 62kg다. 다만 이것은 1RM(1회 최대로 들어올릴 수 있는 무게) 기준으로, 표에 따르면 현재 나는 중급자 수준정도 되는데 평소엔 맥시멈 무게를 세트 5~10회 반복 정도로 운동하는 편이니 평소에 다루는 최대 무게는 25~30kg 정도라고 봐야 한다. '3대 500'을 넘긴다는 상급자 남성이 보통 벤치프레스를 110~120kg 정도 한다고 치면 남성의 입장에서 헬스장 벤치에 걸린 빈봉의 무게가 기본 60kg 정도인 것이나 마찬가지다. 일반 남성 가운데 60kg로 벤치를 웜업 첫 세트로 가져갈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헬스는 다양한 무게를 '가지고 노는' 운동이다.      


 큰 부위의 근육부터 시작해서 작은 부위를 작은 무게로 다루면서 근육을 깨운다. 스쿼트로 100kg를 드는 사람이 삼두 운동은 10kg 어깨 운동은 4kg로 하기도 한다. 20kg로 하던 운동을 어느날은 무게를 8~10kg로 확 낮춰 고반복 운동을 하기도 한다. 그래야 근육이 ‘익숙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의 경우 디폴트 무게 자체가 남성 평균 근력에 맞춰져있기 때문에 이 ‘다양한 무게 활용하기’에 굉장히 제약을 받는다.


 후면 어깨같이 손바닥 크기정도의 작은 근육은 낮은 무게로 적절히 웜업을 하면서 무게를 다뤄야 하는데, 케이블의 기본 무게가 10kg를 넘어가는 곳도 허다하다. 예전에 다니던 헬스장에선 아예 케이블 기본 무게가 14kg에 고정돼있어서 그 이하 무게로는 못했다.      


 몇달 전엔 어깨 후면 운동이 중요하다는 논문을 굉장히 감명깊게 읽고 나서 한동안 어깨 후면 강화 운동에 관심이 높아졌다. 책에 나온 운동을 너무 하고 싶은데 센터의 케이블이 14kg가 최하라서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먹기로 고무밴드를 하나 더 사서 저항감을 이용한 운동을 하거나 작은 덤벨을 이용한 프리웨이트로 대체했다. 옮긴 센터에서 최하 5kg까지 장착 가능한 케이블 머신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란. 물론 그럼에도 5kg 추로 어깨 후면 운동을 하는 건 여전히 버겁긴 버겁다.      


 덤벨로 개인 운동을 할 때도 어떤 센터든 거의 3~7kg의 상대적인 저중량 덤벨들이 한쌍씩만 있는 것이 의문이었다. 나같은 허약자는 3~5kg 안에서 모든 게 다 해결되는데 누가 5kg를 쓰고 있으면 꼼짝없이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한편 40kg가 넘어가는 덤벨들 역시 마찬가지로 한쌍씩 구비되어 있었다.(40kg가 있는게 문제라는 게 아니라, 심지어 40kg 덤벨도 한쌍이 있는데 3~5kg도 마찬가지로 한쌍이라는 게 이상하다는 것이다) 핑크색 고무로 표면을 씌워놓은 '여성용' 저중량 덤벨들도 한켠에 쌓여있긴 했지만 대체로 이런 덤벨들은 3kg가 넘어가는 순간 그립감이 굉장히 두꺼워져서 다루기가 어렵다. (그리고 애초에 고무로 표면을 씌운 이유를 잘 모르겠다. 고운 손에 굳은살 배기면 안되니까?)     


 원판 최소 단위가 보통 2.5kg인 것도 난감한 부분이다. 보통 원판은 바벨의 양쪽에 끼우는데, 그러면 5kg단위로 밖에 무게 조정이 안되는 것이다. 10kg 기본 바벨로 프리쳐컬(가슴과 팔을 받침대에 고정한 채 바벨 또는 덤벨을 들어올려 팔 위쪽을 단련하는 운동)을 고반복으로 하다가 조금 무게를 올려보고 싶어서 양쪽에 '최소' 단위인 2.5kg를 끼웠더니 코에서만 끙소리가 났고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반갑게도 센터 관장님이 1.25kg 원판 두 개를 들여왔다. 하지만 문제는 이 원판 구멍이 일반 바에 맞지 않아서 머리묶는 고무줄 두개로 각각 바끝에 연결하는 방식으로 삐삐머리처럼 '대롱대롱' 매달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당연히 제대로 운동이 불가능했다.      



 여자는 헬스장을 제대로 이용하려면 ‘이미’ 어느정도 강한 상태여야한다.      


 위와 같은 한계는 내가 초중반에 악착같이 힘을 키우는 데 주력했던 큰 이유기도 하다. 일단 헬스장을 제대로 이용하려고 해도 적어도 '평균 이하 남자' 수준은 돼야 기구를 이용할 수 있는 구조기 때문이다. 최소 무게조차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면 헬스장 기구들이 아무리 삐까뻔쩍해봐야 그림의 떡이다. 이건 굉장히 아이러니한 것이다. 대부분 헬스장이 태릉선수촌이 아닌 생활체육을 위해 찾는 일반인들 대상의 업장일진대 어느정도 ‘강한 상태’여야지 기구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니. 특히 여성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기구에 대해서 조금 더 첨언하자면, 최근 샵에 들어오는 대부분의 외산 기구들은 서구/성인남성 체형에 맞춘 것이기 때문에 그립(손잡이)이 기본적으로 매우 두꺼운 편이다. 몇몇 유명 프랜차이즈 헬스장에서 사용하는 기구들은 심지어 국내 성인 남성에게도 큰 편인 경우도 있다. 이렇다면 여성들의 손에는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그립이 크다는 건 단순히 손잡이가 커다랗다는 것 이상의 의미다. ‘손 운동’이라는 건 없지만, 웨이트에서 기본적으로 손을 안쓰는 운동은 거의 없다. 그런데 그 기본이 되는 손잡이 부분이 커다랗다는 건 힘을 사용할 기본 조건이 안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어시스트풀업 머신(보조 턱걸이 기계)을 할 때 손잡이가 크면 전완부(손목~팔꿈치)에 쓸데없는 힘이 들어가 타깃이 되는 부위에 충분한 자극을 먹일 수가 없다. 등을 쥐어짜야 하는 상황에서 등 힘은 아직 10번 할 만큼 남아있는데 손아귀 힘 때문에 3번밖에 못하거나 하는 일이 발생하는 거다. 그래서 나는 일찌감치 스트랩을 두가지 사서 대부분의 기구를 잡지 않고 손목을 손잡이에 연결하듯 얹고 수행해왔다. 물론 남성들도 악력 보강을 위해 간혹 스트랩을 쓰기도 하지만, 만약 기구가 내 몸에 맞춰 나왔다면 비교적 불필요했을 번거로움이다.     


 운동에 활용하는 벤치들도 아예 평균 남성 체형에 맞춰 나오는 것이 많다보니 의자를 최대한으로 내려도 가끔 발바닥이 충분히 바닥에 닿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난 몇몇 동작을 할 때 벤치 밑에 또 발판을 놓고 동작을 수행하곤 했다. 여성 평균신장보다 키가 큰 편인 나도 이 모양인데 (물론 여성 ‘평균 허리’보다 허리도 길다. 아마도...) 더 작은 사람들은 어떻겠는가.     



 '여자도 근력운동 해야한다' '여자들 헬스장가서 웨이트존은 거들떠도 안보더라' 이런식의 말이 요새 많이 나온다. 하지만 이처럼 기구 자체가 대부분 여성에게 맞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웨이트에 취미를 붙이기가 좋을까?      

 내 몸에 맞지 않는 기구를 가지고 운동을 아예 못할 건 아니다. 나를 비롯한 많은 여성분들이 난점에도 불구하고 운동을 지속하고 있다. 하지만 처음 기계에 앉았을 때 내 손아귀에 딱 맞고 모든 머신에서 무게를 조절해서 내게 정확하게 맞는 무게로 다양한 볼륨의 동작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과, 최저 무게조차 힘겨워서 웜업은 꿈도 못꾸고 기구 손잡이, 의자조차 안맞아서 스트랩과 발판을 가지고 다녀야 하는 사람과 같은 질의 운동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해서 “저것 봐. 역시 모든 기구는 남성위주로 나오니까 답은 맨몸운동이야”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맨몸운동 역시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기구는 기본적으로 맨몸운동이나 프리웨이트의 빈틈을 메꾸기 위해 개발된 것이고, 활용만 적당히 할 수 있다면 어떤 스포츠를 하는 사람들이건 근력강화, 컨디셔닝 차원에서 매우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도구’다. 이런 도구들을 단지 여성의 체형에 맞지 않기 때문에 아예 포기한다는 것은 상당히 선택 범위를 좁히는 결과다.       


 지난 3월 NASA는 여성 우주인들로만 이뤄진 우주 탐사를 계획·발표했지만 발표한지 불과 한달도 안돼 취소됐다. 여성 신체 사이즈에 맞는 우주복이 부족해서다. 우주에선 중력의 영향으로 지구에서의 키보다 5cm정도가 커지기 때문에 각자의 신체에 맞는 우주복 제작은 매우 까다로운 일이다. 현재까지 500여명이 넘는 우주인 중 여성의 비율은 11%에 불과하다고 한다. (**최근 프로젝트 재개하기로 하긴 했답니다..!)


 몸에 맞는 우주복이 부족해서 여자 우주인이 적은 것일까? 아니면 여자 우주인이 적으니까 자연히 여자에게 맞는 우주복은 적은 걸까? 비슷한 맥락에서 여성의 몸에 맞는 운동기구가 적어서 여자 운동인구가 적은 것일까? 아니면 여자 운동인구가 적으니까 여성의 몸에 맞는 운동 기구가 적은 걸까? 일부의 문제라고 치부하기엔 거의 모든 분야에서 비슷한 문제가 계속되고 있다.     



 중요한 건 계속 도전하고, 문제제기 하지 않으면 같은 상황이 이어지리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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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족: 헬스장 운영 관계자분이 이 글을 읽으실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혹시나, 만에하나 레이디존 개설에 관해 관심이 있으신 관장님이 있으실까 해서 첨언합니다. 시선이 신경쓰여서 헬스장에 가는 것이 저어될 사람이라면 레이디존 테이프 쳐놔도 안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테이프 쳐놓는다고 시선이 보이지 않는 결계에 의해 차단되는 것도 아니고요.  

 혹시나 정말 진정한 의미에서의 레이디존을 만들고 싶으시다면 5kg부터 미세조정 가능한 케이블과 무게에 정비례해 그립이 두꺼워지지 않는 3~10kg대의 많은 덤벨, 10kg부터 시작하는 벤치 bar, 1.25kg 단위의 원판 등을 구비해놓으신다면... 그런 레이디존이라면 정말로 가고싶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왕이면 개인적인 바람으론 서울 마포구에 만들어주시면 더 좋겠습니다마는)


김냥덕님의 브런치에 기고된 글을 플레이콕이 한 번 더 소개합니다.

김냥덕

2018년 생체 보디빌딩 2급 자격증 취득.
살아남기 위해 운동을 시작해서 운동으로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트윗@kimmomomom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