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개의 검색 결과
아티클
우리는 왜 스포츠 전문인(지도자)를 찾기 힘든가?
체육을 전공한 필자에게 가장 많은 질문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 중 하나는 좋은 체육관 또는 강사 추천이었다. 다른 교과목(영어, 수학 등)과는 달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스포츠 활동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낮은 편으로, 제대로 된 강습을 받는지 조차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개인에게 맞지 않는 강습을 진행하는강사, 스포츠 부상을 입었음에도 개인 부주의로 책임전가하거나 부상 이 후 잘못된 대처방법으로 더 큰 부상을 만드는 강사 등 강사의 전문성 부재로 인해 발생된 문제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수 있었습니다. 반면 강사의 경우 체육관 내 차량운행, 회원관리, 교육지도, 마케팅 등 교육에 집중하지 못한 채 낮은 질의 교육을 진행할 수 밖에 없는 구조적인 환경을 지니고 있습니다. --------------------------------------------------------------- 그 중 체육시설업 등록 절차에 따른 구조적인 문제로 발생되는 전문지도자 부재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합니다. 2015 전국등록신고 체육시설업 - 업종별 업소수 분포 현재 대한민국에 신고된 체육시설업은 총 56,660개 소로, 이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당구장, 체육도장(태권도, 검도, 유도 등), 골프연습장, 체력단련장(헬스장) 순으로 분류됩니다. 체육시설업은 종류에 따라 등록 시설업과 신고 체육시설업으로 구분되며, 체육시설업 신고 후 등록된 시설에 한해 사업자등록 신청 후영업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표에서 보는 것과 같이 단순한 공간시설 외에생활체육지도자를 반드시 배치해야하는 기준이 있습니다. 면적에 따라 체육지도자를 배치하지 않거나 체육지도자 자격이 없는 사람을 배치한 체육시설업자에게는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 또한, 개인이 수련할 수 있는 운동면적을 확보할 수 있는 시설 기준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면적에 따른 회원을 제한된 회원을 모집해야하는 기준이 있습니다. 생활체육지도자 자격증을 보유해야만 체육시설업이 가능한 시스템에...
스포츠인
느림의 스포츠, 특수체육 지도자의 길을 걷다
특수체육 송민기 마스터 저는 장애에 대한 이해와 스포츠의 전문성 그리고 느림의 미학, 이렇게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발달장애 학생이라면 줄넘기 하나가 6개월이 될 수도 1년이 될 수도 있고 그 이상이 될 수 있어요. 대학원 때 특수체육 프로그램에서 장애아동의 사랑스러움을 느낀 것을 계기로 10년 동안 특수체육 강사로 활동중인 송민기 마스터.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체육이라는 매개를 통해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려는 목표를 가지고 활동하는 그의 따뜻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플레이콕 : 안녕하세요, 송민기 마스터님. 간단한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송(특수체육 지도자 송민기) : 저는 2001년 서울대학교 장애아동 체육 교실에서 자원봉사를 시작으로 아동발달 센터, 방과 후 수업 등 10년간 특수체육 지도자로 활동 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자전거 문화 사회적 협동조합에서 일반아동과 발달 장애아동을 대상으로 자전거 프로그램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플 : 장애 아동을 가르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송 : 대학교 3학년 때 특수체육 실습에서 발달 장애 아동을 처음 만나게 되었어요. 그 체육 프로그램을 5회 정도 실시했는데 갈 때마다 아이들이 정말 예쁘고 사랑스럽더라고요. 그래서 장애아동 지도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때 특수체육이라는 것을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자원봉사 개념으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가 서울대학교 장애아동 체육 교실을 찾게 되었고 특수체육 지도자로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플 : 특수체육 지도자로서 통합프로그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송 : 통합프로그램이라고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보긴 어려워요. 통합프로그램을 시행하기에 앞서 필요한 것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장애인 학생들에게 장애에 대한 이해와 올바른 인식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며, 교사들은 프로그램에 더 신경 쓸 필요가 있습니다. 프로그램을 구성할 때 번거롭더라도 비장애인과 장애인 학생의 수준을 고려하여 구성해야 모든 학생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만약 이러한...
스포츠인
메건라피노(Megan Rapinoe)의 명연설을 통해 본 그녀의 이야기
미국 축구선수 메건 라피노 누가 써준 것도 아닌, 누가 시킨대로도 아닌, 그냥 즉흥적으로 이런 명연설을 할 수 있다는 점. 대한민국의 스포츠 선수들에게서는 꿈도 못꾸죠. 스포츠 선수만 그럴까요? 정치인들에게서도 보기 힘들죠. 이런 선수가 대한민국에서도 나오려면 운동만 하게 해서는 안되는 겁니다! 운동 선수랍시고 체대에만 몰아 넣어서도 안되는 겁니다! 자기네들 밥그릇밖에 관심 없으면서 권위만 내세우며 대한민국의 스포츠가 어쩌고 떠들어도 안되는 겁니다. 미국인들 상당수를 감동시킨 그녀의 명연설은 이러합니다. --------------------------------------------------------------- 1.We got tea-sippin This group is so resilient, is so tough, has such a sense of humor. 이팀은 굴하지 않습니다. 매우 터프하죠. 유머감각도 있구요. Its just so badass. 그냥 매우 공격적이죠. Theres nothing that can faze this group. 이 팀을 애먹일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Were chilling. 우리는 냉정하죠. We got tea-sippin, 우리는 차도 마실 줄 알죠. We got celebrations. 우리는 기념합니다. We have pink hair and purple hair, 우리는 핑크색, 퍼플색 머리를 지녔습니다. We have tattoos and dreadlocks. 우리는 문신과 레개 스타일도 지녔죠. We got white girls and black girls and everything in between. 우리는 백인도 흑인도 있으며 그 흑백 사이의 모든걸 지니고 있죠. Straight girls and gay girls. 게이도 있고 게이가 아닌 이도 있죠. I couldnt be more proud to be a co-captain with Carli and Alex of this t...
스포츠
복싱의 역사
Boxing 1.복싱경기의 기원 두 사람이 벌이는 주먹싸움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면,복싱의 역사는 인류 최초의 사회 형태인 수렵채집사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이때부터 사냥과 전투는 생존을 위한 일상적 활동이었는데,식량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맹수와 부딪쳐야했고,외적으로부터 자신과 부족을 보호하는 과정에서 주먹싸움은 공격수단이자 자기 방어의 수단이었다.표준화되고 규격화되진 않았을지라도 주먹싸움이 인류의 가장 원초적 형태의 생존전략인 것은 분명하다.그리고 오늘날 문명화는 진보를 통해 너무도 안전하고,예의 바르고,일상적인 인간의 삶 속에서,야생의 습성들은 복싱,달리기,레슬링,창 던지기 등 다양한 스포츠의 형태로 야생의 삶을 재현하고 있다.즉,근대 스포츠는 원시 인류의 습성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복싱에 관한 인류 최초의 흔적은 고대 이집트,메소포타미아,그리스 등 지중해 문명 곳곳에 남아있다. 권투에 대한 가장 일찍 알려진 묘사는 기원전 3천년 전의 이라크 수메르인의 구호에서 비롯되었다. 기원전 2천년 이후의 묘사는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의 메소포타미아 국가로부터의 구제와 아시아 마이너의 히타이트 예술에서 발견된다.이집트 테베(기원전 1350년)의 구호 조형물은 권투선수와 관중 모두를 보여준다. 초기의 중동과 이집트의 묘사는 싸움꾼들이 맨주먹이거나 손목을 받쳐주는 밴드가 있는 경연대회를 보여주었다. 장갑 사용과 주먹다짐을 한 최초의 증거는 미노안 크레타(기원전 15001400년)에서 찾을 수 있다. 케루에프의 무덤에 새겨진 테라코타 부조에는 세 쌍이 복서가 파피루스 줄기로 막대싸움을 벌이는 장면 이 새겨져 있다.복싱이나 레슬링,막대싸움 등은 당시의 페스티벌에서 널리 행해졌고 특히 파라오를 찬양하기 위한 공연으로 알려져 있다(Poliakoff, 1987). 케루에프 무덤의 복서 * 자료출처: Murray, S. R (2008). Boxing Gloves of the Ancient World. 케루에프 무덤의 묘사는 발견이후 한 때 복싱인지 댄서인지에 대한 논란...
아티클
미국의 임원들은 스포츠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을까?
미국에서상위권대학을진학하고자하는고등학생은단순히학업성적만점자(우리나라수능과같은)를 선호하는 것이 아닌,학업성적(GPA, SAT,ACT)뿐만 아니라방과후활동(스포츠또는예술,학생회나토론또는과학관련부활동),그리고자원봉사활동까지학창시절의전반전인활동을종합평가하여입학을하는것이일반적이다. 또한 팀워크를 중시하는 미국의 경우 팀스포츠 종목이 대학 입학이나 기업 입사 등 가산점을 받는데에 큰역할을 차지한다. 미국의 경우 팀스포츠에서 팀워크는 창의력을 발산하는 데에 가장 효과적인 교육이라고 평가하고 있으며, 이는 다양한 기업에서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기 위한 중요한 척도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사진 : NCAA 또한, 미국에선스포츠장학생 제도를통해취약계층학생들이상위권대학진학의 기회도얻을수있는데,국내와는달리스포츠장학생역시학업성적,스포츠입상성적,자원봉사등종합평가를통해장학생을선발하고 있다. 스포츠장학생제도를통해성공한대표적인사례로는스타벅스의전CEO하워드슐츠가있다. 뉴욕브루클린빈민가출신이었던그는건물반지하단칸방에서살면서생활하였는데,학업 성적이 나쁘지 않았음에도 가정형편으로 대학 진학을 힘들어했습니다.다행히운동에소질이 있던 그는야구,농구,미식축구등다양한종목에서본인의기량을뽐내며 실력을 인정받은 후,미식축구 종목으로장학금을받고노던미시간대학에입학하게되었다. 사진 : NCAA 이처럼미국에서스포츠는교육의중요한부분으로,학생들이스스로학업하고경험할수있는기회를제공한다. 단순히높은점수를받는것이교육이아닌것을알기때문에선진국일수록학업성적뿐만아니라방과후부활동,자원봉사등이모든것을교육의과정이라고여기고적극장려하고있는 것이다. 프로선수 출신 CEO 호르헤 파울로 레만(Jorge Paulo Lemann) 3G Capital 공동창업주 테니스(프로선수, 윔블던 출전) 하버드대학교(Harvard University) 경제학 새뮤얼 팔미사노(Samuel J. Palmisano) IBM 전 CEO (2002~2011) 미식축구(NFL Try Out) Johns Hopkins University 역사학 브라이언 ...
스포츠
휠체어농구의 역사와 규칙
Wheelchair Basketball 휠체어농구의 역사 휠체어 농구는 처음에는 1945년경 미국에서 제2차 세계 대전 군인들을 위한 재활의 한 형태로 개발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루드비히 구트만 경은 영국 스토크 맨데빌의 척추 재활 병원에서 휠체어 네트볼이라는 유사한 스포츠를 개발했다. 미국 팀이 국제 스토크 맨데빌 경기에 참가했을 때, 휠체어 농구가 유럽 전역에서 성장해 가는 것을 본 휠체어 농구에 대한 관심이 더욱 폭발했다. 1960년까지, 휠체어 농구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패럴림픽에서 세계 무대에서 행해졌고, 현재 거의 100개국에서 행해지고 있다. 휠체어 농구는 빠르게 진행되는 의자에 앉는 장애인 올림픽 종목으로 발전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패럴림픽에서는 남자 12개 팀과 여자 10개 팀이 2개의 메달 종목으로 코트를 누비게 된다. 미국이 남자 종목에서 단연 가장 많은 금메달을 획득한 반면, 그들의 우세는 최근 호주와 캐나다에 의해 가려졌다. 호주와 캐나다는 지난 5번의 장애인 올림픽 중 4번의 금메달에 모두 출전했다. 2016년 리우 패럴림픽 남자 결승에는 이 세 가지 조합이 모두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독일과 네덜란드의 여자부에서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유럽의 라이벌전이 나타나고 있다. 네덜란드 여성들은 아직 패럴림픽 금메달을 주장하지 않았으며 1996년 애틀랜타 이후 결승전에 출전하지 않았다. 그러나 2012년 런던에서의 동메달과 세계선수권대회와 지역선수권대회에서의 그들의 최근 형태는 그들에게 이 어려운 상을 탈 수 있는 최고의 기회를 줄 것이다. 독일과 강대국 미국과 캐나다가 올해 올림픽에서 성공하면 금메달 집계에서 확실한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초창기 8종목 휠체어 농구는 1960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제1회 패럴림픽의 일부였던 8개 종목 중 하나이다. 이전 대회에서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가장 우세한 두 나라였다. 미국 남성들은 1972년과 1976년에 열린 패럴림픽 결승전에서 모두 우승했다...
스포츠
농구의 역사
Basketball 농구의 역사 농구의 역사는 1891년 캐나다 체육 강사에 의해 매사추세츠 스프링필드에서 축구보다 덜 다치기 쉬운 스포츠로 발명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겨울 동안 운동선수들을 실내에 머물게 하기 위해 실내 스포츠를 만들었다. 게임은 상당히 빠르게 만들게 되어 20세기가 진행되면서 큰 인기를 끌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미국에서 그 다음에는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 시작되었다. 미국 대학에 농구가 정착된 후 프로 경기가 이어졌다. 1946년 설립된 미국프로농구(NBA)는 세기가 끝날 무렵 수십억 달러 규모의 기업으로 성장했고, 농구는 미국 문화의 필수적인 부분이 되었다. 오늘날 알려진 농구 경기는 1891년 12월 매사추세츠 스프링필드에서 제임스 네이스미스 박사가 어린 선수들을 추운 달 동안 훈련시키기 위해 만들었다. 네이스미스는 매사추세츠주 스프링필드에 있는 YMCA 국제훈련학교(현재의 스프링필드 칼리지)의 체육 강사였다. 상사의 요청에 따라, 네이스미스는 추운 날씨에도 운동선수들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실내 스포츠 게임을 만드는 임무를 맡았다. 그는 지상에서 10 피트 정도 떨어진 과일바구니에 공을 넣으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에서 착안, 겨울스포츠의 필요성과 속도감, 그리고 실내라는 한계성을 고려해서 13개의 기본 조항을 제정한 후 처음으로 농구 경기를 창안하였다. 그 내용은 복숭아 바구니와 축구 스타일의 공으로 구성되었다. 그는 새로운 게임의 13가지 규칙을 발표했다. 그는 열여덟 명의 자신의 반을 아홉 명의 선수들로 구성된 두 팀으로 나누어 그들에게 그의 새로운 게임의 기본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체육관 발코니 하단 난간에 못박힌 과일바구니에 농구공을 던지는 것이 이 경기의 목표였다. 승점 1점이 나올 때마다 경기가 중단돼 관리인이 사다리를 꺼내 공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후 준비해 온 과일 바구니의 바닥이 벗겨졌다. 그렇게 첫 번째 공개 농구 경기는 1892년 3월 11일 매사추세츠 스프링필드에서 열렸다. 처음 농구를 고안할 때만 해도 선수...
스포츠
3X3농구의 역사 및 경기룰
Basketball 3X3 농구의 역사 3x3 농구 (3/3 또는 3x3)는 농구 후프 한 개에 3개씩 하는 경기 형식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의뢰한 ESSEC 경영대학원 연구에 따르면 3x3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팀 스포츠다. 이 농구 경기 형식은 현재 그 스포츠의 관리 기구인 FIBA에 의해 홍보되고 구조화되고 있다.[1] 이 대회의 1차 대회는 FIBA 3X3 월드 투어로서, 마스터스와 파이널 토너먼트 1회로 구성되며, 6자릿수 상금을 미국 달러로 시상한다. 남녀를 위한 FIBA 3x3 월드컵은 3x3 국가 대표팀의 최고 대회다. 3x3는 비록 덜 형식적이긴 하지만 전 세계의 거리와 체육관에서 오랫동안 행해진 농구 형식이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3x3 게임 규칙이 미국 전역에서 표준화되기 시작했는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거스 매커와 후프 잇 업 토너먼트 시리즈를 통해 전국에서 모든 스킬 레벨의 팀과 선수가 참가하는 대형 이벤트를 열었다. 1992년, 아디다스는 이제 해체된 스트리트볼 대회를 시작했다. 이후 전 세계적으로 3x3 종목과 대회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FIBA는 2007년 마카오 실내 아시안 게임에서 3x3를 처음 테스트하기로 결정했다. 2008년 4월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2008년 10월에는 인도네시아에서 추가 테스트 이벤트가 개최되었다. 2009년 청소년 아시안 게임에서 국제 데뷔전을 치렀다. 19개 팀은 남자 토너먼트에서, 16개 팀은 여자 토너먼트에서 경쟁했다. 모든 경기는 싱가포르 타나 메라의 성공회 고등학교에서 열렸다. 3x3는 2010년 싱가포르 하계 청소년 올림픽에서 전세계적인 경쟁력으로 데뷔했다. 이번 대회에는 남녀 부문 모두 20개 팀이 출전했다. 이 대회는 청소년 공간에서 열렸다. 이후 오픈과 U18 두 종목에서 세계선수권대회가 정기적으로 열린다. 싱가포르에서 성공을 거둔 후 FIBA는 자체 포맷과 정규 대회로 3x3를 독립형 게임으로 만드는 풀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3x3는 2020년 하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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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농구의 역사
Basketball 초기여자농구 여자농구는 1800년대 후반에 남자농구와 나란히 개발되었다. 미국의 동부 해안에서 서부 해안까지, 상당부분 여자 대학을 거쳐 퍼져나가면서 인기를 얻게 되었다. 1895년부터 1970년까지 여자 농구라는 용어는 현대 여자 농구와 병행하여 발전한 넷볼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였다. 그것은 대부분 미국에서 인기가 있다. FIBA 여자 농구 월드컵과 여자 올림픽 농구 토너먼트에는 대륙별 선수권 대회의 정상급 국가대표팀이 출전한다. 북미의 주 리그는 WNBA(NCAA 여자부 1 농구 선수권 대회도 인기)인 반면 유럽 최강 클럽은 유로리그 여자부에 참가한다. 여자 농구는 1892년 가을 스미스 칼리지에서 시작되었다. 최근 스미스의 젊은 신체문화 감독으로 고용된 센다 베렌슨은 학생들에게 농구를 가르치며, 이 활동이 학생들의 신체 건강을 향상시키기를 희망했다.남성의 경우, 농구가 야구, 축구 등 기존 팀 스포츠에 실내를 더하는 형태로 디자인된 반면, 여자 단체 스포츠로는 처음으로 농구가 되었으며, 하키, 조정, 배구가 그 뒤를 이었다. 농구의 초기 신봉자들은 미국 전역의 YMCA와 대학들에 소속되어 있었고, 경기는 빠르게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베렌슨은 단순히 여자들에게 게임을 가르치는 데 위험을 감수하고 있었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문화는 여성의 허약함을 강조하고 가정 내 여성의 지위를 우선시했으며, 베렌슨은 게임이 너무 힘들면 신경 피로에 시달리는 여성들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여성들이 세련되고 고상하다는 빅토리아 시대의 이상 안에서 노는 것을 전혀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녀는 수정된 규칙들을 가르쳤다. 그녀는 팀당 9명으로 참가율을 높였고 코트는 세 분야로 나뉘었다. 각 영역(가드, 센터, 포워드)에 3명의 선수가 배정돼 다른 영역으로 줄을 넘지 못했다. 패스나 드리블 등으로 공이 구간에서 구간으로 옮겨졌고, 선수들은 드리블 3개로 제한돼 3초 동안만 공을 잡을 수 있었다. 다른 선수로부터 공을 빼앗거나 치는 행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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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의 경기방법과 규칙
Basketball 농구의 규칙 각 단체별로 세부 규칙이 다르지만 대부분의 단체는 FIBA의 국제 룰을 기반으로 약간의 로컬룰이 첨가된 방식으로 운영한다. 다만, NBA와 FIBA는 전체적으로 규칙들이 많이 다른 편이다. 대표적으로 수비자 3초룰이나 루즈볼 파울은 NBA에는 있지만 FIBA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플레이어 장비 각 팀은 언제든지 코트에 5명만 허용되는 12명의 선수로 구성된다. 포지션은 포인트 가드, 수비 가드, 센터, 공격 포워드, 수비 포워드로 나뉜다. 각 선수는 코트에서 포지션을 취하지만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다. 코트는 직사각형 모양으로 길이가 91피트, 너비가 50피트나 된다. 중앙에서 작은 원이 발견되는 중간 선이 있는데, 여기서 경기는 팁을 빼고 시작한다(심판이 공을 공중으로 던지며 각 팀의 선수가 자신의 팀을 위해 점유권을 획득하려고 한다). 코트의 양쪽 끝에는 높이가 10피트인 두 개의 바구니가 있다. 3점 호는 바깥쪽 고리인 반면, 그 가운데에는 자유투 라인을 포함하는 부분이 있다. 경기에 필요한 것은 코트와 농구뿐이다. 팀은 보호를 위해 껌 방패와 얼굴 마스크를 착용하기로 선택한 일부 선수와 일치하는 스트립을 착용해야 한다. 경기는 4 12분 25초로 나뉘어져 있다. 2쿼터와 3쿼터 사이에는 15분 반의 시간 간격이다. 점수 매기기 농구선수의 득점 번호는 3개다. 3점 아크 밖에서 득점을 하는 바구니는 3점이 된다. 3점 원호 안에 넣은 바스켓은 2점이 된다. 자유투가 성공하면 자유투당 1점이 된다. 자유투의 수는 반칙이 어디서 일어났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경기의 승패 농구 경기에서 이기는 것은 매우 간단하다. 할당된 경기 시간에 상대팀보다 더 많은 점수를 획득한다. 점수가 마지막에 동점이 되면 우승자가 나올 때까지 쿼터를 더 치르게 된다. 득점 방식 득점을 올리는 방법은 상대편 골대(림)에다 공을 넣는 것이다. 3점 라인이라는 선 밖에서 던져 넣으면 3점, 그 이외는 2점이며, 자유투로 인한 득점은 1점이다.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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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의 포지션
Basketball 포지션 구분 농구에는 5개의 포지션이 있다. 이 포지션은 모든 조직/조직되지 않은 농구팀에서 고용된다. 포인트 가드(PG), 슈팅 가드(SG), 스몰 포워드(SF), 파워 포워드(PF), 센터(C)로 정의된다. 포인트가드는 코트에서 사실상 팀의 리더다. 이 포지션에는 상당한 볼 핸들링 기술과 플레이 중 팀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슈팅 가드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장거리에서 정확하게 슈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최고의 슈팅가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스몰포워드는 공을 다룰 때 바스켓에 적극적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스몰포워드도 샷 오픈을 위해 바스켓에 컷을 찍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워 포워드와 센터가 앞코트를 구성하며 팀의 1차 리바운드나 슛 블로커 역할을 하거나 내부 슛을 하기 위한 패스를 받는 경우가 많다. 중심은 일반적으로 둘 중 더 크다. 농구에서 코트에 동시에 서는 5명은 선수들의 장점과 작전 수행능력에 따라 포지션을 구분한다. 크게 농구의 포지션 구분은 가드, 포워드, 센터로 구분한다. 이후 가드중에서도 포인트 가드(PG), 슈팅 가드(SG), 포워드 중에서 스몰 포워드(SF), 파워 포워드(PF)로 세분화가 되어 가장 이상적이고 일반적인 형태의 포지션 구성으로 정립되있다. 포지션을 숫자로 나타내는 경우에는 PG를 1번, SG를 2번, SF를 3번, PF를 4번, C를 5번으로 부른다. 포지션 수행 선수에 따라 한 포지션밖에 못 보는 선수들이 있는가 하면 전술에 따라 두 가지 이상의 포지션을 소화해 내거나 뛰는 포지션과 하는 플레이 성향이 다른 선수들도 있다. 골밑 플레이를 하면서 사이즈와 운동능력까지 겸비한 경우 센터와 파워 포워드를 둘 다 소화해 내는 식이나, 포인트 가드와 슈팅 가드를 다 소화 가능하다거나 한 식이다. 보통 한포지션의 역할에 충실한 포지션을 퓨어, 두가지 포지션의 역할을 해내는 것을 듀얼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포인트 가드의 경우 공격력에 치중되어 있다면 듀얼 가드, 볼배급, 경기조율등...
라이프
마라톤의 사계(四季) - 가을
마라톤의 사계로 글을 쓰던 중 겨울, 봄, 여름은 그러대로 잘 썼지만 마지막 글인 가을편은 정말 마무리하기가 힘들었다. 사계절을 쓰는 중에 마지막이라 그런지, 절실하게 할 이야기가 있는 건지, 아니면 없었던 욕심이 일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절실하다는 건 사실 안타깝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낙엽이 지는 시간일 수도 있고, 벚꽃이 땅에 떨어지는 시간이거나, 아니면 가을이란 계절이 길게 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나, 단풍을 오래 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아니면 조금이라도 더 달리고, 더 잘 쓰려는 나의 욕심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살면서 참 많이 달렸어.라는 말은 가슴이 뭉텅 빠지는 느낌이다. 무엇엔가 들인 시간은 어떻게든 모두 돌려받는다는 말처럼 달리기에 쏟았던 시간에 맞는 선물을 천천히 하나씩 돌려받았다. 소질 없는 평범한 일반적인 러너의 성장기를 쓰고 싶었다. 어떻게 초보 러너가 매 번 달리면 빠른 기록이 되고, 달리는 거리는 얼마나 멀리 늘어나는지, 무슨 이유로 시간과 공간을 넘어 꾸준히 성장하는 러너로 지내왔는지 생각하면 놀랍다. 내가 이룬 것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아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하는 생각에 자주 멈칫했다. 수많은 러너는 주로에서 무슨 일이 있었고, 달리는 일이 아름답다면 무엇 때문에 아름답다고 생각한 건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달리기를 겨울에 시작했으니 겨울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게 맞다. 달리기의 겨울, 봄, 여름 그리고 가을로 이어지는 사계절의 여정이 순조롭게 끝나길 바란다. 러너들은 길 위에서 사계를 모두 보고 느끼고 몸에 새기는 사람이다. 모든 것은 단 하나의 점에서 시작했고, 그와 함께 주로(走路)에서 달릴 때가 인생에서 가장 많이 웃고, 즐겁고, 행복했다는 사실은 조금도 변함이 없다. 마라톤의 사계(四季) [마라톤의 사계(四季) - 겨울](https://fishpoint.tistory.com/3179) [마라톤의 사계(四季) - 봄](https://fishpoint.tistory.com/3190) [마라톤의 사계(四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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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에 있던 여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열여섯의 늦은 가을, 나는 한참 드라마 태릉선수촌에 빠져있었다. 드라마는 국가대표 선수들의 사랑과 꿈에 대한 내용이었다. 유도하는 남자 주인공의 넓은 가슴팍에 중학생 소녀의 가슴은 쉴 틈 없이 벌렁거렸다. 금메달과 사랑을 동시에 쟁취하려는 주인공들의 풋풋한 모습은 청춘 그 자체였다. 그래, 어른이 되면 나도 저렇게 되겠지! 드라마를 보며 어렴풋이 나의 20대를 상상했다. 그쯤 우연히 알게 됐다. 같은 반 친구 예슬이도 태릉선수촌에 푹 빠져 있다는 사실을. 드라마는 금요일 밤에만 하는 8부작 단막극이었기 때문에 인기가 없었다. 이 재밌는 드라마를 나 혼자만 본다는 사실이 조금 아쉬웠던 참이었다. 헐 너도 그 드라마를 안다고? 우리는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치면 인사만 하고 지나치는 사이였지만, 같은 드라마를 본다는 이유만으로 금방 친해졌다. 그다음 우리는 만화 슬램덩크로 넘어갔다. 강백호의 투지에, 정대만의 여유로움에 다시 환호성을 질렀다. 그들이 흘리는 땀이 부러웠다. 높은 여름 기온에 비실비실 흐르는 내 땀방울과는 차원이 다른, 농도 짙은 땀이었다. 우리는 그해 겨울 내내 뜨거운 코트를 가르며~너에게 가고 있어~ 슬램덩크 OST를 흥얼거렸다. 그다음 단계는 축구장. 우리는 자연스럽게 축구를 보러 몇 번 축구장을 갔고, 우연히 TV를 돌리다 중계 중인 배구 경기를 보고 배구 경기장까지 찾아갔다. 그렇게 우리의 열여섯은 스포츠를 구경하는 관람객으로 서서히 물들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관심사가 스포츠에 한정되어 있던 것은 아니었다. 당시 학교 교복 치마는 빨간색 잔 체크무늬였는데, 무당벌레를 떠오르게 하는 검은색과 빨간색의조합이 촌스러웠다. 고등학생이 되면 드디어 예쁜 교복을 입을 수 있다는 생각에 신이 났다. 야, 교복 예쁘게 입으려면 한 5킬로는 빼야 할 것 같지? 본격적으로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한참 이소라 다이어트 비디오가 유행하고 있었다. 우리는 네모난 모니터 화면 속에서 수영복만 입은 채 열심히 팔 운동하는 이소라 언니를 분주히 따라 했다. 엄마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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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장에서 보이는 것들, 깨달음은 언제나 어느 곳에서도 온다.
고등학교 입학식 때의 일이다. 교장선생님이 말씀하시길. 태양을 향해 화살을 쏘아라. 그러면 태양까지는 도달 못하더라도 그 가까이에는 갈 것이다. 그때는 그리스 로마 신화 얘기 중 하나인가 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개똥철학인가 하며 두리번거리는 얼굴들도 많았다. 물론 그 화살이 귓등에도 스치지 못한 경우가 더 많았다는 것은 팩트다. 지금 그 얘기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선생님이 하신 말씀의 속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무의미하고 부질없는 얘기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목표 설정과 노력에 대한 의미 부여는 공감할 수 있겠다. 아마도 교장선생님 말씀의 속뜻은 공부 열심히 하지 않으면 너네 인생은 죽 쑤리라 그런 의미였을 수도 있겠지만. 아이들과 농구를 하면 원래 하늘 색깔이 노랗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처음에는 팔과 어깨가 아프다가 나중에는 다리가 후들거리고 농구코트가 축구장보다 더 크게 보일 때도 있다. 농구 활성화는 요즘 아이들의 큰 키와도 인과관계가 있다. 성장판을 자극하는 운동이다 보니. 서글픈 것은 아빠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관절만 자극하고 키는 더 이상 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파스가 필요한 시간. 농구를 하다 보면, 아니 농구 경기를 보다 보면, 현란한 드리블에 박수를 치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상대 수비를 따돌리는 드리블도 좋지만 역시나 바스켓에 골을 넣은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다. 멋진 드리블과 패스가 골로 이어질 때 게임으로서 농구의 묘미가 있는 것이다. 게임은 과정도 중요하지만 이기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정설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위해 꿈을 꾸고 구체적인 계획을 짜고 그 실행을 위해 적잖은 시간을 투자한다. 이러한 노력이 헛되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목표인 표적을 정확히 정조준하거나, 타깃을 간접적으로나마 조준할 수 있는 핵심 부분을 터치할 필요가 있다. 농구가 딱 그랬다(물론 다른 운동도 그러하겠지만). 농구의 다양한 슛을 연습해서 자유자재로 슛을 할 수 있게 하는 것도 골이라는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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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 Story - 국가대표 투포환 선수 박봉식과 중고등학교 친구들
중학교에 올라가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다. 송구부 주장이었던 정광모는 졸업 후에 한국일보에 들어가 기자가 되었고 여기자의 표상이 되었다. 육상 선수로 당시 최고 기록을 남긴 장석호는 세브란스로 진학하여 의사가 되었다. 4명의 릴레이 선수 중 나는 첫째로 달렸고 장석호는 항상 마지막 주자로 뛰었다. 앞에서 실수를 하거나 잘 못 뛰어도 석호는 언제나 다른 팀을 따돌리고 여유 있게 도착했다. 후에 이화여자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한 친구 심치선은 연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를 역임하고 명예교수로 은퇴했다. 운동을 함께한 친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박봉식은 최초의 여성 국가대표 선수였다. 주 종목은 투포환, 투원반이었는데 농구, 자전거, 육상, 스케이트 등 모든 운동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처음에 농구부에 들어왔고 육상부를 거쳐 주 종목으로 삼은 투포환을 했다. 우리도 곁에서 그 모습을 보며 투포환을 저런 식으로 던진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중국에서 유학을 왔는데 우리와는 다른 특별한 체육 교육을 그곳에서 받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광복 후, 조용하고 듬직했던 이 친구는 1948년 KOREA 마크를 달고 우리나라 운동선수들이 참가한 첫 올림픽인 제14회 런던 올림픽에 투포환 선수로 참가하여 18위를 차지했다. 올림픽에 참가한 단 한 명의 우리나라 첫 여자 선수였다. 실제 국내에서 남긴 기록은 세계 기록감인데 20박 21일간 9개국 12개 도시를 거쳐서 런던에 도착했으므로 쌓인 여독과 우여곡절의 사연들, 낯선 환경과 국제 무대에 대한 두려움으로 제 기량을 다 드러내지 못한 것 같아 무척 안타까웠다. 우리는 대한민국 국가 대표팀의 일원으로 이상훈 코치와 투포환의 봉식이가 런던으로 떠나기 전에 환송회를 열었고 커다란 꽃다발을 주었다. 멋진 친구를 두게 되어 자랑스럽고 뿌듯했다. 봉식이는 졸업 후에 뇌수막염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기대했던 것만큼 성장한 후에 많은 활약을 보지 못해 못내 아쉽다. 1948년 KOREA마크를 달고 첫 출전하는 런던 올림픽, 선수 환송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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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 Story - 저기 이화 6번 간다!
창신 소학교 시절, 집에서 학교까지 저학년 아이가 걷기에는 거리가 좀 멀었다. 학교를 오고 가는 길에 동덕여자 중고등학교의 무척 높은 학교 담장을 따라가야 했다. 담장 옆 거리 한편의 큰 우물 근처에 서면 그 학교 높은 담 위로 불그스레한 큰 공이 휙휙 날아다니는 게 보였다. 하얀 판때기 앞에 굵은 그물로 엮은 주머니가 달려 있는데 주머니 아래는 뚫려있었다. 난생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커다란 공이 하늘로 휙 날아와서는 그 망태기 속으로 쏙 들어가는 게 마냥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푸른 하늘을 가르고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온 커다란 밤색 공이 망태기 속으로 쏙 들어갈 때면 왠지 모르게 활명수 가스가 속에서 터져 나오듯 시원했다. 누가 어떻게 던지는 건지는 보이지 않고 커다란 공만 허공을 가르며 이리로 가고 저리로 가다가 망 속으로 쏙 쏙 빨려 들어갔다. 호기심도 자극했고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져서 매일 쳐다보았다. 저게 무슨 운동일까? 몹시 궁금했지만 학교 안으로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언니가 되면 저런 큰 공놀이를 하는구나, 나도 나중에 저걸 꼭 해 봐야지! 해 봐야겠다! 하는 마음이 허공을 가르는 공을 볼 때마다 쌓여 갔다. 그때는 그 큰 공놀이가 농구라고 불리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전학 간 첫날, 이화여자중학교 운동장에 들어서니 바로 그 망태기 골대가 한두 대도 아니고 줄지어 서있어서 깜짝 놀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화에는 농구부와 농구 골대가 이미 몇 대 있었는데, 내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할 즈음 어느 학부형이 학교 농구부 격려 차원에서 농구 골대를 12대나 기증한 것이었다. 이화여자중학교에 오니 학교와 선생님들이 펼쳐 보여주는 것이 많아 신문물을 끊임없이 대하는 것 같았다. 맘껏 배울 수 있는 드넓은 울타리 안에 들어와 있음을 직감했다. 나는 특활반을 지원하는데 망설일 것도 없이 농구부에 바로 신청했다. 비록 노천이었지만 여학교에 농구 골대가 십몇 대나 있어서 이화농구팀이 충분히 연습하고도 남았다. 심지어 연희전문학교 상대 출신인 우리 중학교 이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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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알못, 여자농구동아리를 처음 접하다
10년을 넘게 운동을 했지만, 순수하게 동호회 활동을 해본적이 없었다. 해외에 여행갈때면 야외코트에서 농구를 즐기는 이들이 늘 부러웠지만 농구 경험이 나에겐 그림의 떡이었고, 함께 어울려 운동하지 못한다는 아쉬움에 언젠간 농구를 꼭 배워서 같이 어울려야지 라는 버킷리스트를 갖고 있었다. 어린 시절 기본기를 배우지 못한 상태에서 성인이 된 나는 처음 시작을 한다는 것에 두려움이 있었고, 농구를 전혀 하지 못하는 나에게 동호회 가입 그 자체가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특히 팀스포츠는 내가 아닌 팀 전체가 함께 움직여야하는 종목이기에, 잘 못하는 내가 들어갔을 때에 민폐를 끼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학창시절 농구와 피구, 배구를 했지만 운동을 싫어하는 친구들과 함께하니 잘하는 1-2명의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점수내기 위한 플레이였고, 체육선생님은 두 개로 나뉜 팀에게 전술이나 팀워크가 아닌 그냥 이기는 팀에게 수행평가 점수를 높게 주는 수준에만 운동을 했으니 제대로 된 운동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농구를 선망의 종목으로 보던 중, 플레이콕 핸즈업농구클럽 프로그램 진행을 위해 매일 출근하며 서당개마냥 조금씩 기본기를 배울 수 있었고 농구를 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고 어느정도 기본기를 터득하고 자신감이 조금 생긴 나는 핸즈업 멤버 중 한명이 소속된 동호회에 게스트를 신청하고 처음으로 정식 농구게임을 할 수 있었다. 낯선 사람들, 아직은 나에게 어려운 종목인 농구. 모든 것들이 두렵고 무서웠다. 하지만 나의 걱정과는 달리 함께 하는 멤버들이 룰과 방법, 위치 등 친절한 가이드 덕분에 금방 적응할 수 있었고, 팀스포츠가 이렇게 즐겁다는 사실을 진짜 처음으로 느껴본 순간이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팀플레이가 가능한 단체스포츠를 경험한 이들을 선호한다고 한다. 각자의 역할과 개성이 분명하면서 팀의 승리를 위해 기여하는 팀워크. 우리 팀이 잘하기 위해선 내가 위치한 포지션에서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희생이 아닌 전력을 다해 싸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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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 농구예능이라면 매주 봐야겠다 SBS 신규 농구예능 <진짜농구, 핸섬 타이거즈> 1회 리뷰
차은우가 농구예능을 한다, 차은우가 서장훈과 뭉친다. 서장훈이 농구예능을 통해 감독이 된다. SBS의 신규 농구예능 진짜 농구, 핸섬 타이거즈의 런칭 관련 기사에서 눈에 띄였던 말들이다. 농구를 사랑하고, 농구 예능을 기다리는 한 사람으로서 솔직히 전혀 기대가 되지 않는 기사 헤드라인들이었다.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이렇게 또 내가 사랑하는 농구가 흘러가는 하나의 예능으로 소비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다만 첫 방을 시청할 정도로 조금의 기대를 가졌던 이유는 이상윤, 줄리엔강, 문수인 등 일부 멤버의 실력을 알고 있었기에 농구를 어느정도 할 것이라는 이유였고, 서장훈이 심사숙고해서 정한 예능이니만큼 막연히 실망시키지는 않을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였다. 1월 10일 밤 11시, 핸섬타이거즈의 첫 방송이 나왔다. 첫 방송을 보고 남기는 간단한 소감은 딱 한 마디이다. 이제껏 본 농구 예능, 아니 스포츠 예능 중 가장 멋진 스타트였다고. --------------------------------------------------------------- 서장훈은 핸섬타이거즈 런칭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본인은 농구로는 장난치지 않는다고. 그리고 장난칠 것이었으면 시작도 안했다고. 그간 서장훈이 프로선수로 활약할 때부터 농구를 봐왔기 때문에 그의 농구스타일을 알았고, 그의 결벽증, 예능에서의 까칠한 캐릭터 모두 알고 있다. 그랬기에 그가 농구예능을 선택했다는 것에는 많은 고민이 있었고, 본인만의 까다로운 검증과 조율을 거쳐 프로그램을 수락했을 것이라 믿었다. 첫 방송을 보니, 그 믿음이 옳았음을 증명받은 느낌이다. 방송을 보고 딱 들었던 생각은 깔끔하다는 것. 그간 농구예능을 봐오면서 아쉽다고 느꼈던 것은 방송과 농구의 균형이 맞지 않다는 점이었다. 농구에 포커스를 강하게 두었던 농구예능은 방송으로서의 재미를 살리지 못했고, 방송으로서의 재미를 살렸던 예능은 농구의 매력을 확실하게 보여주는데 실패했다고 보았다. 하지만 핸섬타이거즈는 다양한 촬영구도, ...